예로부터 우리는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즐거운 일이 있을 때, 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부러 건수를 만들어서라도 마시면서, 술은 우리 생활 속에 자리 잡아 오고 있다.

우리 민족은 특별히 술을 사랑하는 민족이라 지역별로 재미있는 무용담도 있고 술에 얽힌 많은 이야기가 있듯이, 서양의 술인 와인도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오다 보니 유별나게 와인을 사랑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별난 사람들 중에서 특별히 별난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할까 한다.     

 

첫 번째는, 포도주 통 속에 빠져 죽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국의 클래런스(Clarence) 공작인 조지 플랜태저넷(George Plantagenet) 은 그 형들이 나중에 에드워드 4세와 리차드 3세 왕이 된 왕족이었다. 그도 장미전쟁에서 큰 역할을 하였으므로 형들과 잘 지냈으면 왕의 동생으로 그럭저럭 한평생을 잘 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또 혹시 운이 좋으면 왕이 될 수 있었을 터인데 그의 운명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뭔가 왕과 잘 맞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지 감정대립을 하다가 마침내는 반역 행위를 저질러 체포되었고 런던탑에 수감되는 신세가 되었고 후에 사형되었다.

당시 귀족들은 처형될 때 대부분 참수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그는 477 리터 크기의 맘시 포도주(Malmsey 주: 크레타에서 생산된 마데이라 와인) 술통에 빠트려 죽임을 당하는 비공개 사형 집행을 당했다는 전설과 소문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의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참수의 흔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럴듯한 전설 중 하나는 원래 그가 대단한 술꾼이기도 하였고, 또 왕의 동생이었기 때문에 참수라는 끔찍한 처형보다는 덜 끔찍한 방법으로 술통에 빠져 죽도록 하는 특별한 배려를 하였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또 다른 전설은 반역 사건에 엄청나게 격분한 형이 동생에 대한 특별 배려를 거부, 어떤 방법으로든 사형을 집행하였고 그의 주검을 술통에 담아서 수도원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아무튼 플랜태저넷은 와인 술통에 빠져 죽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는, 죽어서도 술통을 가지고 간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12 세기 경 독일의 요한 푸거(Johann Fugger)라는 주교가 어느 날 로마 교황청에 볼일이 있어서 하인을 한 명 데리고 독일을 출발하여 로마로의 긴 여행을 시작하였다.

요즘 같으면 비행기나 고속전철(TGV)로 잘하면 하루만에 갈 수 있고 혹 자동차로 가더라도 잘하면 하루나 이틀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나, 당시에는 요즘같이 편리한 교통편이 없었으므로 말을 타고 갈 수밖에 없었고, 말을 타고 가면 여러 날이 걸리는 여행길이었다.

독일에서 스위스를 통과하여 험준한 알프스를 넘어서 이탈리아로 직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코스이므로 아마도 알자스, 론 강을 따라 내려가 프랑스 남부 해안 지방을 지나서 리구리아와 토스카나를 통과하고 로마가 있는 라치오를 지나가는 코스를 택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 주교는 특히 미식가이면서도 와인을 좋아했던 터라, 여행을 하다가 식사 때가 되면 하인을 먼저 동네로 보내면서 "동네에서 가장 음식을 잘 하는 식당을 찾아서 식당 입구 벽에 에스트(Est!)라고 적어두라"고 시켰다. 자기는 나이가 많으니 천천히 뒤따라 가다가 동네에서 "에스트"라고 적힌 식당을 찾아 들어가 식사를 하겠노라고 말했다.

하인도 요리에 일가견이 있었는지 또는 주위에 물어보았는지, 요리를 잘하는 식당을 용케도 잘 찾아서 입구에 석필로 "에스트" 라고 큼지막하게 써두었고 주교는 "에스트"라는 글자가 써진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했다고 한다.

주교 일행은 늘 만족하게 식사를 하고 와인도 즐기면서 즐겁게 여행을 하다 보니 어느덧 긴 여행이 거의 끝나서 이제 로마 근처까지 오게 되었다.

그날 저녁에도 식사를 위하여 하인을 동네로 미리 보내고 주교는 뒤따라 천천히 마을로 들어가서 "에스트" 라고 적힌 식당을 찾았는데 이집 저집을 찾아가다 보니 한 식당 입구에 "에스트! 에스트! 에스트!"라고 에스트가 세 번이나 적힌 식당을 발견했다.

 

주교는 "아! 이 녀석이 보기에 이 식당의 요리와 와인 맛이 기가 막히게 좋은 모양이구나" 하고는 아주 기분이 좋아져서 큰 기대를 가지고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게 되었다. 그날의 만찬과 와인은 정말로 맛이 훌륭했던 모양이었다. 물론 신앙심이 깊은 이곳 식당 주인이 멀리서 온 주교를 위하여 특별하게 요리를 잘 해 드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식사도 즐겁게 잘 하고 특히 그 동네에서 생산된 와인이 아주 입맛에 맞았는지 상당히 많이 마시고 취한 채로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문제는 다음날 아침에 벌어졌다.

주교가 전날 밤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신 탓으로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하인이 한참을 기다리다가 다시 "일어나시라"고 했지만 기척이 없어서, 깨워보았는데 아, 그만 그대로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 아닌가.

소식에 놀란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그 동네 음식, 특히 와인을 사랑한 주교를 조문하고 동네의 좋은 자리에 묘를 만들어 정성껏 장사해드렸다.

이듬해의 기일에도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추모 예배를 하고 주교가 좋아하던 와인을 맘껏 드시라고 주교의 묘에 오크통으로 한 통의 와인을 부어 드렸다.

이렇게 동네 사람들은 주교의 묘에 수 백 년 동안 이러한 추모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주교는 죽어서도 매년 와인 한통씩을 가져간 셈이다.

지금도 그 와인이 생산되고 있는데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인 이 와인의 이름이 바로 '에스트!, 에스트!, 에스트!' 이다. 이곳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유명한 와인이다.

혹시 독자들께서 로마 근처에 가는 일이 있거든 꼭 이 '에스트!, 에스트!, 에스트!' 와인을 맛보시기 바란다. 그러나 꼭 잊지 않고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다음날 아침에는 꼭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글:김준철